외환거래 이런저런 경험담

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6월 23일 | 0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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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엔화 환율은 달러당 109.41 / 2021.06.02 새벽 1:23 기준

외환거래 이런저런 경험담

김대중 정부의 경제 정책 요체는 개방과 시장이었다. 한마디로 신자유의다. 시장이 최고의 사회적 외환거래 이런저런 경험담 가치로 군림하는 판국에 왜 달러를 쓰자는 주장이 나오지 않는지 이상할 정도다.

왜 아직도 원화 대신에 달러를 쓰자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지 이상하다. 김대중 정부 들어 지금까지 일일이 세기에도 힘들 정도로 많은 경제 정책과 조처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 요체는 개방과 시장이었다. 더 간단히, 한마디로 말하자면 신자유주의이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자본의 국적을 따지지 않으며, 외국돈과 자본의 이동을 가로막던 국경이 외환거래 이런저런 경험담 없어졌고, 언젠가부터 우리들 마음 속의 국경도 철거되었다. 또 시장과 돈을 앞서는, 우리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진실로 승복할 수 있는 어떤 덕목과 가치가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지 의문일 정도로, 시장은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사회적 가치가 되어버렸다.

사진설명 ⓒ이건모 그림

이런 판국에 달러를 쓰자는 주장이 여태까지 제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정말 이상하다. 신자유주의의 이론적·이데올로기적 근거인 시장 효율성에 비추어 보더라도 대외 개방은 위험한 게임이다. 전면적 대외 개방은 언제라도 외환 위기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나라를 결딴 낸 1997년 외환 위기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현재의 전방위적 대외 개방이 외환 위기의 위험에 완전 노출되어 있음은 자명하다. 하지만 외환 위기 차단을 위한 이런저런 제도적 장치들도 모두 마땅치 않다.

여기서 잠시만 생각해 보자. 만약 우리가 원화 대신에 전세계에서 가장 힘이 세고 안정적인 달러화를 법정 화폐로 삼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정의상 외환 시장도 없을 것이고 따라서 외환 위기라는 말도 아예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화폐 가치 안정, 외환 거래 비용 절감 등등 엄청난 이득도 함께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몇 가지 심각한 선결 문제가 없지 않지만, 적어도 경제학자의 머리 속 그림 차원에서 이는 외환거래 이런저런 경험담 그냥 국내의 원화를 모두 달러화로 바꾸는 기술적인 문제일 뿐이다. 화폐를 개혁할 때 구권을 신권으로 전부 교체하는 것처럼 원화를 달러화로 바꾸면 되는 것이다. 비용과 절차는 화폐 개혁과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문제는 그만한 달러화를 어떻게 확보하느냐인데, 이는 남미 어떤 나라가 이미 시도했던(그러나 시도에 그쳤던) 것처럼 미국과 달러 공급 협정을 맺어 해결하면 될 것이다. 그후로는 미국의 공개 시장 조작에 참여하여 국내 달러 공급을 조절하면 된다. 혹시 미국과의 협상이 상당 기간 힘들다면 사정이 바뀔 때까지는 과도기적인 두 가지 대안이 가능하다. 첫째는, 홍콩처럼 고정 환율제를 채택하는 것이다. 둘째는, 하이에크의 경쟁화폐론을 원용하여 원화와 달러화를 같이 사용하는 일종의 병행 화폐제를 채택하는 것이다. 전자는 막대한 외환 보유고와 강력한 정책 의지가 전제되어야 하는 데다 한국 외환 시장의 경우 의외로 투기적 공격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므로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하다. 후자는 한글과 영어로 공용어로 하자는 주장처럼 원과 달러를 모두 법정 화폐로 하고 양자 간의 교환 비율은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하는 방안이다. 그러면서 점진적으로 국내 달러 유통량을 늘려 궁극적으로 원화를 폐지하는 것이다. 이 경우 유럽의 화폐 통합 경험이 유용할 것이다.

그런데 왜 이 간단한 발상이 여태 나타나지 않은 것일까. 우리나라 신자유주의자들의 상상력이 빈곤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박물관에 가 있어야 할 구시대 유물인 어설픈 민족주의가 가로막기 때문인가. 최근의 교육 추세, 영어 공용어 주장, 한국 사회의 정체성 위기 등등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세계화 시대에 아직도 한국이라는 문패의 가치를 승인하게 만드는 어떤 공감대가 우리 사회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다고 생각하고 또 믿는다. 이렇게 믿는 나 역시 구제 불능의 민족주의자인가?

의식의 흐름대로 이런저런 이야기

내가 FX마진을 처음 접한 것은 2010년 10월 경이다. 새로 나온 금융 상품은 한 번씩 경험 삼아 거래를 해보는 편인데 마침 키움증권으로 FX마진 거래가 가능하다길래 계좌를 하나 만들었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한 번 직접 거래를 해보고 익숙해지면 나머지는 금방 쉽게 이해가 된다. FX마진 상품은 두 개의 다른 통화가 " / "로 연결이 되는 것으로 표기가 되는데 FX마진 호가 전광판에는 아래와 같이 나온다. 통화1/통화2, USD/JPY, EUR/USD 등등.

FX마진 호가전광판

FX마진 트레이딩은 Buy and Sell 둘 다 진입이 가능하다. 통화1/통화2를 매수 한다는 것은 통화1의 가치가 통화2에 비해 가치가 상승하는 것에 베팅을 하는 것이며 통화1/통화2를 매도 한다는 것은 통화1의 가치가 통화2에 비해 가치가 하락하는 것에 베팅을 하는 것이다.

즉, USD/JPY 외환거래 이런저런 경험담 매수 포지션에 진입을 하면 달러가 엔화에 비해 가치가 상승하면 이익이 발생하고 USD/JPY 매도 포지션에 진입을 하면 달러가 엔화에 비해 가치가 하락하면 이익이 발생하는 구조이다. 다른 말로 달러당 엔화 환율이 110엔에서 120엔으로 엔화의 가치가 하락을 하는 경우 USD/JPY 상품 매수 했다면 이익이 나고 USD/JPY 상품 매도 를 했다면 손해가 나는 구조이다.

현재 엔화 환율은 달러당 109.외환거래 이런저런 경험담 41 / 2021.06.02 새벽 1:23 기준

지금은 USD/JPY 한 계약에 진입을 하는데에 약 $10,000이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가 주로 거래를 했을 때는 $5,000로 진입이 가능했었다. 하여튼 해당 상품은 레버리지가 꽤 높아 작은 환율 변화에도 꽤 큰 수익이 날 수 있다. 물론 꽤 큰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 FX마진은 주말을 빼고 하루 종일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에 (하루 24 시간 중 약 23 시간 정도 거래 가능) 퇴근 후에 FX마진 트레이딩에 한동안 빠져 있었다.

환율 시장은 간혹 외부 사건으로 인해 큰 변동이 순식간에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럴 때 큰 이익이나 손해가 발생 가능하고 약 -80%의 수익률에 도달하면 강제청산이 된다. (강제 청산 발생 손해율은 증권사마다 다르다. 아마도.)

2011년 3월은 파생상품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처음으로 뼈저리게 알게 된 시기다. 당시에는 엔화 환율이 1달러 당 약 83엔 수준으로 일본 경제 상황에 비해 엔화의 가치가 너무 높다고 생각해 항상 엔화 약세 포지션을 주로 가지고 있었다. 2011년 3월 11일에 일본 대지진이 발생했고 이제 엔화의 가치 하락 (달러당 엔화 환율 상승) 추세는 더 빨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환율 추세는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로 달러당 엔화가 77엔까지 떨어지면서 오히려 엔화 가치가 급격히 상승을 했고 결국 강제 청산이 되면서 몇 천만 원이라는 큰 손실이 발생했다. 강제 청산이라는 것도 처음 겪어 보는 것이었고 손실 금액도 컸기 때문에 한동안 괴로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일본 2011년 3월 11일 대지진으로 엔화의 가치는 생각과 달리 한동안 초강세를 보였다. 달러당 77엔까지 갭 하락이 보인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거래를 시작했다. 엔화 약세 포지션을 주로 잡았고 다행히 엔화의 가치가 달러에 비해 점점 하락하면서, 즉 엔화 환율이 점진적인 상승을 하면서 수익이 발생했고 다행히 모든 손실을 복구하고도 꽤 큰 이익이 발생했다. 아래 엔화 환율 차트를 보면 엔화 환율이 점진적으로 계속 상승을 하는데 USD/JPY 매수 포지션을 더 길게 가져갔더라면 훨씬 큰 수익이 나겠지만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고 언제 급변할지 모르기에 약 1억 원 정도의 누적 이익으로 FX마진 거래를 졸업(?)했다.

달러당 엔화 환율 월봉 차트. 2012년 하반기부터 엔화 가치는 점진적으로 하락을 시작한다.

참고로 FX마진은 각 나라 간의 금리 차이로 발생하는 이자를 지급하거나 받을 수 있는데 이는 아래와 같이 표시가 된다. 이자(S)와 이자(B)는 해당 상품을 Sell이나 Buy 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이자다. 첫번째 줄에 있는 USD/JPY.S 를 매도했다면 매일 $1.1의 이자를 주어야 하고 매수했다면 $0.7의 이자를 받을 수 있다. 현재는 모든 나라의 금리가 하향 평준화되어 있어 이자 금액이 크지 않지만 예전에는 호주의 금리가 꽤 높았기 때문에 AUD/USD를 매수하면 매일 $6 이상의 이자를 받을 수 있었다. 적은 금액 같지만 AUD/USD 매수 포지션을 1년 정도 유지한다면 이자로만 $6 X 365 = $2,190를 받을 수 있었다. 한 포지션 당 증거금이 $10,000 이기 때문에 일 년 이자율이 무려 21.9%이다.

FX마진 상품을 거래하면 시세차익 외에 이자를 받을 수도 있다.

나는 더 이상 FX마진 거래를 하지 않는다. 하지 않는 이유는 FX마진보다 레버리지가 더 높은 해외 선물을 접하게 되면서 FX마진 거래가 시시해졌기 때문이다. 주로 크루드 오일 해외 선물 트레이딩을 했는데 약 일 년 전부터는 증거금이 가장 싼 천연가스 해외선물 트레이딩을 하고 있다. 천연가스 해외선물은 1 계약 당 증거금이 현재 $2,255이다. 높은 변동성으로 인해 하루에 100% 이상의 수익이 나기도 한다. 물론 반대로 가능하다.

2021년 6월 1일 오늘은 다행히 $5,345 수익이 발생했다.

그렇다고 FX마진 거래를 앞으로 영원히 안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특정 통화의 큰 방향성이 확실히(?) 보인다면 진입할 수도 있다. 본격적인 금리 상승기로 접어들어 국가 간의 금리 차이가 예전처럼 다시 커진다면 안전한(?) 이자 수익을 노리고 진입할지도 모른다.

외환거래 이런저런 경험담

가끔 생활 속에서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 일반인이라는 단어를 쓰는 오류를 범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일반인이란 사전적으로 ‘특별한 지위나 신분을 갖지 아니하는 보통의 사람’을 뜻한다. 이는 장애인을 특수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잘못된 장애 감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장애인들이 꼽는 이상적인 사회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공존하는 사회라고 한다. 그런 사회에선 차별이나 배려와 같은 단어가 설 자리가 없다. 김정태 용인시장애인희망포럼 대표는 ‘장애인 복지 인프라 구축은 모든 사람 복지를 위한 기본’이라고 말한다.

용인시장애인희망포럼 김정태 대표(용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는 3급 장애인으로서 장애인들의 공공복지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해온 인물이다. 그는 그 공로로 2018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각 분야 전문인 또는 기관을 선정해 공로를 격려하는 ‘한국전문인대상’ 복지부문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은 장애인포럼 등 활동을 통해 장애인 인식 개선 활동과 장애인의 삶의 질 확보를 통해 기본적인 행복 추구권 확보를 위해 노력해온 김정태 대표를 만났다.

- 용인시장애인희망포럼이 어떤 단체인지 소개해 주시죠.

다른 여러 단체의 경우 보통 시에 뭔가를 요구하거나 부분적인 지원을 요청하는 등의 지엽적인 문제로 접근하고 있어서 전체 장애인의 복지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단체입니다.

2018년에 만들었습니다. 회원이 많은 것은 아니고 용인시 장애인 공공복지에 의미를 두고 있는 분들 몇 분이 모여 만들어 이런저런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장애인 당사자들이 개인별로 목소리를 내오기는 했지만 정책 제안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 부분에 집중해오고 있어요.

용인시는 110만의 인구를 가졌지만 공공 인프라가 많이 부족한 편이에요. 장애인 체육관, 장애인 수영장 하나 없는 현실이죠. 저상버스(바닥이 낮고 출입구에 계단이 없는 버스)의 경우 전국 평균이 20%를 넘었고 서울은 50%인데 용인은 아직도 3%가 안 됩니다.

그뿐 아니라 문화적 측면에서도 뒤떨어져 있어서 그런 부분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해서 포럼 형식으로 만들었습니다.

- 대표님은 어떤 장애가 있으신가요?

4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습니다. 50년 넘게 그렇게 살고 있어요. (미소)

- 진부한 말이지만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보다 아무래도 인생살이가 더 고달프지 않나 싶습니다.

지금까지 세상에 내 장애를 맞추고 살아왔어요. 물론 저는 다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합니다. 지금 활동 이전에는 방위산업체에서 28년 정도 근무를 했었고요. 요즘 저는 사람들을 만나면 사람이 장애가 아니고 환경이 장애라고 이야기합니다.

제 삶을 뒤돌아보니 사실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한데 환경에 막혀 못했던 것이 많았어요. 장애인들에게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뿐 아니라 움직이는 것 자체가 환경에 가로막히기 때문에 그런 환경을 외환거래 이런저런 경험담 극복하는 것이 진짜 극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를 극복한다고 말을 하는데 그런 극복이란 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세상과 같이 어울릴 수 있도록 환경이 개선돼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래도 예전보다 훨씬 나아지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삶도 똑같이 좋아진 과정에서 장애인 삶은 여전히 벽에 막혀 있어요. 이제는 그 벽을 깨보자는 것이죠. 말씀드렸듯이 과거에는 시혜로 바라봤다면 이제는 권리를 주장하는 겁니다.

내가 이동할 수 있는 권리, 접근할 수 있는 권리, 먹을 수 있는 권리 등 저는 장애인 최대 복지는 바로 이런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자리도 최고의 복지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제가 열거한 외환거래 이런저런 경험담 것들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 권리이자 기본적인 행복이잖아요.

장애인으로 세상에 맞춰 살아온 삶

- 열심히 살았지만 그래도 장애 때문에 좌절한 경험이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내가 하고 싶은 욕구대로 하기보다 항상 세상에 맞춰서 살아오다 보니 어떤 억눌림이 있어요. 항상 자유롭지 못하다고나 할까요?

남들은 저만치 가 있는데 나는 항상 밑에서 거기에 닿으려고 애를 쓰면서 살아야 하는, 남들은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저는 더 많은 힘을 써야 하고 노력하고 살아야 하는 그런 점들 말이에요. 살면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라면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고 청춘을 다 바친 방위산업체에서 퇴직한 뒤였습니다.

그 회사가 대기업으로 넘어가면서 간부로 일했던 저는 회사가 퇴직을 요구해 나올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 후 대한민국에서 이력서를 안 내본 회사가 없을 정도로 구직 활동를 했는데 아무 곳도 받아주지 않더군요. 그때 제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이었는데 2~3년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습니다. 모 상조회사에 입사했는데 장애인 센터가 있었어요. 장애인 센터를 맡게 되면 외환거래 이런저런 경험담 장애인 단체에 가입해야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해서 다른 장애인 단체에서 단체장을 잠시 동안 했습니다.

그런데 그 활동을 하면서 그동안 억눌렸던 제 마음이 이상하게 풀어지더군요. 막상 저는 상조 영업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안 하고 장애인 운동만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활동하면서 다른 장애인 단체들이 개별적이고 부분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을 보고 장애인에 대한 통합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포럼을 만들게 되었던 것이죠.

용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용인IL센터)의 장애인 고용 관련 강의를 진행하는 모습(2021년 7월)/사진=용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홈페이지

용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용인IL센터)의 장애인 고용 관련 강의를 진행하는 모습(2021년 7월)
/사진=용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홈페이지

관심이 용인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 용인에서 30년 이상 거주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장애인 복지 정책에 대한 소감이 궁금합니다. 개선점이나 칭찬할 점은 무엇인가요?

용인은 난개발 도시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분당처럼 계획적인 개발이 아니라 택지 개발이 부분 부분에서 이뤄지다 보니 난개발로 이어져 온 것이죠. 그러다 보니 계획적인 공공 인프라 구축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삶의 질은 계속 떨어진다고 봐야겠죠.

대한민국이 장애인 비율이 한 5.5% 정도 되고요. 경기도도 한 5.4%(실제 경기도홈페이지 통계자료에 의하면 2020.12월 기준 인구대비 4.24%)인데 용인이 장애 인구가 약 3.8% 정도 됩니다. 사람들은 타지역보다 장애인이 적으니 살기 좋은 도시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아니거든요. 더 살기가 어려워 용인에서 못 살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갑니다.

그만큼 문화·예술·생활체육 등 이런 인프라가 너무 없는 거예요. 교통도 마찬가지고요. 처인구의 경우도 산단 개발을 보면 대규모 산단이 한군데 집중적으로 개발 중입니다.

도로나 교통 이런 인프라가 먼저 구축되고 개발이 돼야 하는데 산단이 먼저 개발되고 그 뒤에 공공 인프라들이 구축되고 있기 때문에 교통 지옥이 되고 있어요. 출퇴근 시간에는 거의 교통지옥이라고 봐야 하죠. 물론 수지나 이런 곳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또 처인구에 축구장 30개 크기의 대규모 물류단지가 완공됐고 또 몇 년 내로 그 몇십 배의 물류단지가 또 개통됩니다. 그때가 되면 처인구는 정말 답이 없게 돼요. 그런 부분이 우리 장애인 복지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용인이 산업도시도 좋지만 사람 중심의 문화예술의 도시로서 중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용인의 시정 구호가 사람 중심인데, 뭐랄까 일 중심이 돼 가는 느낌이 들어 좀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인프라 구축 없이 인위적으로 무조건 용인을 150만 도시로 만들겠다는 그런 생각에 대해서는 반대합니다. 아니, 반대라기보다 굳이 그렇게 인위적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고 봐요. 문화와 예술, 복지 이런 부분에 대한 인프라 구축이 돼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가 된다면, 교통 인프라 구축이 된다면 인구는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돼요.

그런 인프라를 기반으로 도시가 성장해야 하는데 아파트 단지만 많이 짓고 인위적으로 인구만 늘린다면 사람들의 삶의 질 자체가 떨어지고 매력 없는 도시가 되겠지요.

- 정부나 용인시에 특별히 건의하고 싶은 시급한 문제가 있습니까?

이동권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 이동권의 가장 기본은 장애인 이동권과 접근권이거든요. 그 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누려야 될 자유잖아요. 이 부분이 너무 제약이 많아 개선됐으면 좋겠습니다.

기흥구 선거관리사무소에 가면 3층 건물인데도 엘리베이터도 없어요. 저희 같은 사람은 갈 수 없죠. 장애인이 가면 1층에서 전화해 내려와달라고 요청해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곳이 선거와 관련한 장소인데 그런 곳조차 이동권, 접근권 보장이 안 돼 있는 거예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용인이 계획도시가 아니라 부분 개발이 이뤄진 곳이다 보니 그런 면들이 미흡하죠.

또 용인은 도농 복합도시인데 면 단위로 표지만 세워져 있지 정류장 자체가 없는 곳도 많습니다. 이런 곳을 포함해 저상버스가 실은 더 필요한데 용인시에서는 그런 곳들은 장애인들은 타지 않고 버스가 다니기 힘들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저상버스가 장애인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거든요. 용인시에서 어르신들 면허 반납하면 10만 원을 준다고 하는데 그런 것을 할 게 아니라 저상버스가 들어와 시골 어르신들이 용인시까지 나와 장 보고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준다면 운전하라고 해도 안 합니다.

그런 환경은 만들려 하지 않고 삶의 질보다 계속해서 개발 위주의 정책으로 가는 게 아쉽습니다.

장애인 복지, 특히 장애인 복지 공공 인프라 구축은 전체 복지에서 가장 아래에 해당합니다. 그렇기에 이 부분만 잘해 놓으면 장애인뿐 아니라 아이들, 어르신들 등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어요.

노인복지 따로 장애인 복지 따로 아이들 복지, 임산부 복지 따로 할 필요가 없다고 봐요. 장애인 복지 인프라를 구축해놓으면 누구나 다 이용이 가능합니다.

- 장애인들을 위한 활동을 계속 해오시면서 가장 보람됐던 경험이나 시절이 있었다면요?

요즘이 제일 보람됩니다. 그러나 요즘은 세상을 향해 제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좋습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가끔 제 스스로 선동가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세상을 위해 이것은 바꿔야 하고 저것은 잘했다 칭찬해줍니다. 그런 과정에서 조금씩 변화하니까 보람되죠.

한 예로 동백 세브란스병원 앞에 육교가 있는데요, 병원으로 올라가는 언덕 중간까지 육교를 연장하면 장애인뿐 아니라 어르신들도 훨씬 이동하기 편리하다고 조언해서 연장한 것이에요. 훨씬 많은 사람들이 저 때문에 편리하게 다니게 됐습니다.

아주 큰, 핵심적인 변화는 아니지만 그런 작은 변화들도 필요하거든요. 사람들이 저를 보면 “회장님 때문에 요사이 땅만 보고 다녀요” 이런 말을 합니다.

하늘을 보고 다녀야지 왜 땅을 보고 다니냐고 하면, 땅바닥에 턱이 있는지 없는지 보고 다닌다고 해요. 그만큼 사람들이 주변 환경에 관심을 갖고 다닌다는 뜻이죠. 저는 관심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합니다.

화약고 같은 외환거래, 촘촘히 관리해야[기고/백성기]

백성기 전 외환은행 외환사업본부장

언론은 최근 4개 시중은행을 통해 1년 6개월에 걸쳐 약 7조 원의 수상한 외환 거래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기간도 상당히 길고 그 액수는 천문학적이며 서민 은행인 KB국민은행까지 개입됐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외환 거래는 원화 거래와 달리 건별로 특별약정과 절차를 걸쳐 적법하게 이뤄진다.

은행은 일일 스퀘어 포지션(square position·외환 보유 제로)을 원칙으로 보유 외환을 가지지 않는다. 이는 은행이 환율 변동에 의한 환차손에 노출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은행은 고객의 필요에 따라 거래하며, 이는 결국 공개된 외환 시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아무리 감추고 비밀로 하려 해도 일일 20억, 30억 원 수준의 국내 외환 시장에서의 거액 거래는 그 실체가 바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필자는 의무적으로 사전 및 사후 보고를 해야 하는 현 법규 체제하에서 외환 당국이 모르는 거래는 결코 없다고 단언한다. 이번 대규모 외환 거래에 대한 비호 세력이나 최소한의 묵인 세력이 있을 거라 의심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가상화폐의 투기 세력이 ‘김치 프리미엄’을 노려 판매하고 이를 외화로 바꿔 송금했다는 의문도 제기된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기업을 시켜 무역 거래로 외환거래 이런저런 경험담 위장했다는 것은 이 분야에서의 경험에 비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입금 없는 출금이 어디 있으며 수출입 허가 없는 대금 결제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국세청, 관세청, 한국은행은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얼마나 대단한 세력이기에 불법 거래를 2년이나 계속할 수 있겠는가.

이 거래는 투기 세력이나 자금 세탁이나 최소한 금융기관과 권력의 협조나 암묵적 비호 없이는 불가능하다. 더욱이 사후 관리가 엄격한 외환 법규하에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 일이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은행은 지금도 수취인의 존재나 신용 파악은 우리 소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는 소액이고 통상적인 외환 거래에서는 맞다. 그러나 거액인 데다가 적성국으로 분류되는 나라와의 거래에서는 그 파급 효과에 비춰 얼마나 무책임하고 위험한 사고인지 모르겠다.

현재의 혼란한 국제 정세 속에서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스위프트(SWIFT·국제금융통신망)를 통한 전산 필터링을 강화하고 제재 범위도 최고도로 넓혀 운영하고 있다. 이런 때 수상한 외화 거래가 적성국의 물자나 무기 구입 대금으로 쓰일 가능성이 없다고 누가 장담하겠나. 심지어 북한 관련설까지 나도는 엄중한 상황에서 어느 금융기관이라도 제재 대상이 된다면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에 대재앙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2000년 대북 송금의 실무 책임자로 연루돼 고초를 겪은 바 있다. 평생 몸 바쳐 일한 외국환 전문은행인 외환은행이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아픔도 겪었다. 지금 펼쳐지는 외환 거래 사건을 바라보며 왜 폭발 직전의 공포감이 엄습해 오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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